<보이 이레이즈드>, 2018 포스터

 

<보이 이레이즈드>는 제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보았던 영화입니다. 덕분에 처음으로 넷플릭스 가입도 도전하게 되었네요. 

조엘 에저튼 감독의 <보이 이레이즈드>는 가라드 콘리의 동명 회고록을 원작으로 두고 있으며, 동성애자이자 목사의 아들인 자레드(루카스 헤지스)가 '전환 치료'의 대상이 된 후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커밍아웃한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는 트로이 시반이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개인적으로 트로이 시반의 노래를 자주 들어왔어서 감상하다가 헉 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기성세대에서 전환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과정을 이렇게 세세히 알게 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전환 치료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정상적인성별 규범에 들어맞는 사람이 된다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폭행과 폭언으로 사람들을 그 틀에 강제적으로 밀어넣습니다. 작중에서는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조차 이러한 행동이 폭력 행사임을 알기 때문에 내부 사정을 유출하지 않으려고 하기도 했고요.

치료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새삼 실감하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이러한 치료들이 여전히 세계 어느 곳에서는 합법이라는 사실이 절망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작중에서 캐머론이 전환 치료의 대상으로 구타를 당하다가 자레드의 탈출을 도운 다음 날 자살한 장면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자레드가 탈출하고 나서 이런 행동을 하고도 캐머론은 저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캐머론이 자살했기 때문이에요. 자레드의 주변에는 호모포비아였다가 마음을 바꾸어 그를 지지해 주기 시작한 어머니가 있었지만, 캐머론은 아무런 지지기반도 없이 사람들 앞에서 구타를 당하거나 수치심을 느껴야 했던 점이 대비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을 보며 성소수자 주변 지지자의 여부가 그들의 생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한 장면이 저에게 충격적이었기에, 영화를 보면서 캐머론과 자레드의 환경적 차이점에 대해서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자레드가 어머니에게 자신을 데리러 와 달라고 전화했을 때 어머니가 오지 않았더라면, 자레드는 그곳에서 더욱 집중적인 치료를 받으며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캐머론처럼 자레드 또한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을 지도 모르고요.

성소수자에게 그들을 지지해 주는 주변 인물의 존재는 중요하지만, 그런 지지를 받지 못하는 환경에 처한 성소수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그들과 연대하고 지지해 주는 앨라이의 존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가족들이 혐오를 이기고 그들과 함께할 수 있어야겠지요.

 

그렇다면 성소수자에 대하여 무지 상태였던 자레드의 어머니는 어떻게 마음을 바꾸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무지를 해결하고 그들과 연대할 수 있게 될까요?

자레드의 어머니가 계속해서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남편과 종교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자레드의 편에서 지지해 주게 된 건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레드의 어머니는 성소수자 이슈를 대할 때 내 아들은 그럴 리 없고,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바꾸면 된다는 마인드로 접해 왔었죠. 그러나 자신의 아들인 자레드가 전환 치료 중 도움을 요청했을 때는 바로 달려와 그를 구해 주었고, 바로 전환 치료를 중단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게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요.

이처럼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 중 성소수자가 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사람들이 성소수자에게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를 날릴 수 있게 하는 것에는 우리의 주변에도 성소수자가 있다는 인식의 확산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소수자는 먼 나라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 있으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도 있을 수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주어야 하고,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성소수자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종교 활동을 하고 있지 않기에 종교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함부로 손을 얹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목사님 집안에서 자란 성소수자로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얹어 보면 이렇습니다:

종교에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은 그들이 이 시대에서 비교적 덜 가시화된 소수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기성 기독교 집단은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소수자 및 약자들을 차별하거나 박해해 온 일이 많았죠. (이런저런 전쟁이나...) 성경을 근거로 원주민이나 유색인종 등 약자를 탄압했고, 타 집단과 자신들을 비교하고 배타적으로 행동하며 종교 집단 내 결속력을 높였습니다.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인종차별이 죄로 취급되는 현대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내부 결속을 공고히 하기 어렵습니다.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문제가 찬반의 영역에 오르내리고 있는 지금에는 그 대신, 성소수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닐까요? ‘동성애는 죄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동성애를 하지 않는사람들은 교리를 잘 따르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잣대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최근에 <인권옹호자 예수> (김지학, 2018) 라는 도서를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기성 기독교 집단의 혐오적 주장을 성경 구절을 근거로 반박하고 있는데요. 결론은, 기성 기독교는 성경 구절을 취사 선택하고 있고, 성경 구절은 '취사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 공부를 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저자 왈 실제로 성경에서는 전도 활동에 방해가 되니 결혼하지 말아라라는 구절이 있는 동시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구절이 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각 구절이 쓰인 시대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인데요. 또한, 성경은 현대와 맞지 않는 여성 혐오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성경 구절을 문자 그대로 따르기는 힘들다고 합니다. 저자는 성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이 기록했기 때문에 모순된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오류도 있을 수 있지만, 성경을 읽는 각 사람에게 성령이 역사한다고 믿는 편이 더 좋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렇게 인식할 때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저자에 의해 축적된 경험과 지혜를 지금 이 시대에 사는 나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용: <인권옹호자 예수> (김지학,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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